1907년 평양에 성령은 어떻게 임하셨는가?
How The Spirit Came to Pyung Yang
그레이엄 리(Graham Lee, 이길함)
1906 년 8월, 우리 평양 주재 선교사들은
연합 사경회를 개최했는데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생활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산의 하디( R.A. Hardie) 박사가
와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모임에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자신의 삶을 완전히
조종하시고 주님께 봉사하도록 강하게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라는 열망이 생겨났습니다.
사경회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선교사 연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갔고, 그곳에서 하워드
존스턴(Howard Agnew Johnston) 박사를 만났는데, 그를
통하여 서울 선교사들이 매우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스턴 박사가 평양에 와서 머무는
동안, 우리 한국인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인도에서 성령이
놀랍게 나타나신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존스턴 박사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성도들도 똑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큰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열망이 생겨나고 나서부터 축복이 임할 때까지 그
일을 위해 한국인 성도들과 선교사들은 계속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연례회에 돌아와서 특별 기도회를 몇 차례 가지면서 하나님의 영이 쏟아 부어지기를 기도했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한국인 성도들은 집회에 즐겁게 참여했지만 성령은 권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기도했으며 성탄절을 지내면서 우리 선교사들의 마음 속에 특별 기도주간을 가지자는
생각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의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이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기 전에 남성들을 위한 겨울 사경회가 시작되었고, 약 700명의 성도들이 2주간 동안 성경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이 겨울 사경회 때 특별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강렬한 기대감을 주셔서, 우리 장로교 선교사들은 매일 정오에 모여 이 겨울 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행한 이러한 일은 우리 자신에게도 큰 이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오 기도집회를 우리에게 '벧엘'(bethel)이었기
때문입니다.
1907년 1월 6일, 우리는 장대현 교회에서 평양 시내 4개 장로교회 교인들이 참여한
연합 겨울 사경회를 저녁 기도회로 시작했습니다. 이 집회를 남자와 여자가 함께 드리기에는 예배당 건물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장대현 교회에서는 남자 성도들만 모이도록 했고, 여자 성도들은
네 개의 다른 장소로 나누어 집회를 갖고, 학생들은 숭덕학교 부속 예배당에서 집회를 갖도록 했습니다.
장대현 교회는 약 1,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데.
매일 밤 교회는 만원이었습니다. 집회는 토요일 저녁까지 매 저녁마다 열렸는데 능력이 점증적으로
나타났고 토요일 저녁 집회 때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주일 낮에는 각 교회로 흩어져 정규 예배를 드렸고, 주일 저녁에 다시 장대현 교회에 모여 연합으로 계속 집회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그 저녁 집회 때부터 위대한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했지만 큰 축복을 받지는 못했고 그 대신 대단히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회는 마치 죽은 것 같았고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부터 멀리 떠나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설교를 한 번 하고 몇 명이 피상적인 신앙고백을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자백한 것인 없었던 셈인데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가진 채 숙소로 갔습니다. 그 이전까지 집회에서는 혼이 깃든 신앙고백이나 실질적이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죄의 고백들이 있었지만 이번 주일
저녁 집회는 모든 것이 차단된 것 같았고 집회는 죽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국인 형제들도
우리 선교사들과 같은 느낌을 가졌고, 주일 저녁은 참으로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월요일 낮 집회 때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며 소리를 높여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월요일 저녁에 축복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도하면서도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저녁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갔습니다. 우리가 장대현 교회 예배당에 다다랐을 때에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짧게 마친 후에 우리는 함께 소리를 내어 기도했고, 모든 청중이 이에 동참했습니다. 설교를 짧게 마친 후에 우리는 함께
소리를 내어 기도했고, 모든 청중이 이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성기도는 이번 집회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였습니다. 기도 후에 자복이 있었고 그 후에 찬송을
부른 후 인도자는 회중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후 집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집에 가라고 하면서 원하는 사람들은 남아서 아침까지 우리와
함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약 500명 내지 600명 정도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예배당의 한쪽 날개(남자석)으로 모아 놓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제껏 경험 해 보지
못한 집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에, 소리를
내서 죄를 고백했는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 곳에 모인 회중에게 강림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회중이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내어 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복하였는데 자신의 죄에 대한 고통과 번민으로 마룻바닥에 몸을 내던지고
주먹으로 땅을 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우리 집 요리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려고 애쓰다가 그러는 중에
자복 하고 기도실 맞은편에 있던 내게 소리쳤습니다.
"목사님! 말씀해 주세요. 나에게도
희망이 있습니까? 나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 리고 그는 바닥에 자신을 내던지고 울고 또 울었는데, 극심한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가 죄를 고백하면 즉시 전 회중이 통성으로 기도했는데 수백 명이 회중이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죄의 고백이 이어진
후 회중들은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모두 눈물을 흘렸고 울고 기도하는
식으로 집회를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장대현 교회의 중진, 특히 강씨(강유문)와 김씨(김찬성)가 서로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 몇몇 선교사는 집회 기간 동안에 이들이 죄를 회개하고 화해 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드디어 월요일 밤 강씨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얼마나 김씨를 싫어했는지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처럼 당당하고 완고했던 강씨가 쓰러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얼마나 김씨를 싫어했는지 말하려고 애쓰다가 다시 쓰러지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새벽 2시쯤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자신의 죄를 자백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배당이 점점 추워졌고, 또한 저녁 집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집회를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요일 저녁 기도 집회 때 우리 선교사들은 전날 저녁에 있었던 놀라운 집회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고, 화요일 저녁 집회에는 더 위대한 축복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월요일과 마찬가지 형식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한국인 목회자 중에서 가장 은사를 많이 받은 길선주
장로의 설교가 끝난 후에, 원하는 사람은 모두 집에 가도록 했는데 또 다시 600명 정도가 남았습니다. 화요일 집회는 월요일 저녁 집회와 거의
똑같았지만, 집회 중에 나타난 역사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우리 몇몇 선교사는 교회 중진, 특히 김씨(김찬성)와 주씨(주공삼)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 두 사람이 자백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화요일 저녁 집회는 김씨가 힘을 얻어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되었을 때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강단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곧 바로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씨는 마음 속으로 다른 형제, 특히 블레어(W.N. Blaire) 선교사를 미워하였음을 자백했고 그러한 미움들을 모두 쏟아냈습니다. 김씨가 겪었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마치 발작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가 자복했을 때 모든 회중은 온통 눈물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그들은 울고 또 울고, 계속 울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도 그들과 같이 울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 회중이 눈물 흘리며 울고 있을 때 강씨가 기도하기 위해 나왔는데, 그는 속속들이 자복했고
마치 자기 심장을 찢는 것처럼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제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에게 팔을 올려놓자 그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 후 강씨는 김씨에게로
가서 사랑스럽게 그를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김씨는 정신이
들자 블레어 선교사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블레어 목사님,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나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블레어 목사님도 기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버지!"라고 한 후 한두 마디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미 형용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회중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전혀 멈추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회중이 잠잠해지도록 찬송을 불러야만 했는데, 그 중 몇 사람은 스스로를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회중은 잠잠해졌고, 다시 죄의 자백이 시작되어 집회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 저녁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숭실대학교 학생이 드린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에 대하여 사람들 앞에서 자백할 것을 요청했고 기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그 학생은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도는 내가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벗겨지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간음과 미움,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일과 지금은 잊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죄들을 고백했습니다. 그 학생은 울면서 기도하였는데 거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가
울자 다른 회중들도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마치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집회로 겨울 사경회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 집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가 이제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기쁜 것은 수요일 저녁 4개 교회로 나누어 가진 기도회에서도 동일하게 강력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전에 수요일 저녁 집회 때 장대현 교회 장로 두 명을 선출하겠다고 공고한 바 있었는데, 예배를 드리는 도중 그날 저녁 장로를 선출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그날 밤 장로로 선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배를 짧게 마친 후에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남은 교인들이 자리를
잡자 우리는 함께 통성으로 개도했고, 그 즉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자백하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몇 명이 자백한 후 주공삼 장로가 용기를 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집회는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그 놀라웠던 화요일 집회 내내 주 장로는 자리에 있었는데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주 장로가 사람들 앞에서 자백해야 할 끔찍한 되가 있음을 확신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는 강단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내 옆에 섰는데 그것을 본
나는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왜냐하면 주 장로가 굴복하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깨끗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 장로는 더듬거리며 자백하기 시작하였는데 점점 또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자 그의 모든 죄가 드러났습니다. 주 장로는 간음과 교회 돈을 횡령한 죄를 자백했는데 이를 자백하면서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 휩싸인 듯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보아 온 적 중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에 사로잡힌 인간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고 있었는데 그가 강단에서 떨어질 것 같아 나는 그들 두 팔로 붙들어 주어 서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마음 속에 두려운 고통을 느끼면서 주 장로는 소리쳤습니다.
"이제껏 나보다 더 끔찍한 죄인이 있었습니까?"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손으로 온 힘을 다해 설교 단을 내리쳤습니다. 마침내 그는 바닥에
누워 용서를 구하며, 고통 가운데 몸을 비틀고 또 비틀었습니다. 주
장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곧 죽을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그것은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아! 그러자 한국인 형제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그를
끌어안고 번민으로 고통 받는 그를 위로해 주었는데, 그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주 장로가 자복하자마자 전 회중은 울음을 터트렸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또 울었고, 전혀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찬송을 불러야만 했습니다. 집회를 조금 더 가진 후에 모든 교인이 해산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에 있음을 감사 드렸고, 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도록 만든 성령의 능력을 그가 받아들이도록 이끄신 것에 더 감사를 드렸습니다.
수요일 아침에 성숙한 소녀와 부인들을 위해 설립한 숭의여학교에서도 똑같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교장인 스눅(V.L. Snook)양은 평소처럼 학교에 갔고, 1교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0시에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그 날은 정규 예배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짧은 설교와 기도를 드린 후, 여학생들은 고꾸라져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집회는12시를 넘긴
후에도 기도와 눈물, 그리고 죄의 자백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 금요일에는
모든 수업을 뒤로 미루고 아침 내내, 그 이전 이틀 동안과 마찬가지 형태로 집회를 가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요일 아침에 장대현 교회 부속 숭덕학교에서도 똑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학교는 여느
날과 같이 시작 되었지만 어디에서도 수업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후
1시까지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 중 세 명은 집회가 집행되는
동안 자제력을 잃고 극도의 긴장감에 쌓여 정신을 잃었습니다.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인 교사들은
그러한 긴장감을 어떤 식으로 적당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에는 성령이 어린 소녀들이 다니는 숭현여학교에도 내렸습니다. 우리 선교사들 중
일부가 학교 교실 옆을 지나던 중 비통하게 우는 소리를 듣고 그곳에도 똑같은 성령의 능력이 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사 베스트(M. Best) 양이 즉시 학생들을 돌아보기 위해 갔습니다. 그 소속을 들은 번헤슬(C.F. Bernheisel) 부인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기 위해 시내에 있는 여학교로 내려갔습니다. 번헤슬 부인이 여학생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전하자 그 즉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요일 정오에 우리가 드린 기도회에서도 똑같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평소에는 30분 가량 기도회를 가졌는데 그날 우리는 2시까지 기도회를 계속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전에 한 번도 그러한
기도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임하셨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를 공격적으로 만들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 노력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남자 사경회가 열리는 기간 내내 여신도들도 다른 곳에서 독자적으로 집회를 가졌는데 여성 집회에서는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성들을 위해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장대현
교회에서 집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여성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집회
중에 몇 명이 죄를 형식적으로 고백하고 독선적인 노파가 일어나 두서없이 몇 마디 말한 것이 전부였는데, 그
자리에서는 성령께서 힘 있게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목요일 밤이 되어서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고, 여성들도 남성들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죄를
자백하면서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한 젊은 소녀의 자백이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는데, 그는 오랫동안 우리 모두에게 고통과 안타까움을 안겨주건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밤 그 소녀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마치 사진의 심장이 부서진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주일 오전, 장대현 교회에서 우리는 평소와 같이 성경 공부 반을 열었고 오후 예배 때 또
다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설교했는데 그는 아주 생생한 연극으로 설교를
끝냈습니다. 그는 줄로 자신의 허리를 동여맨 후에 교회의 임원 중 한 사람에게 줄을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단 저편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매큔(G.S.McCune) 선교사에게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세로 길선주는 죄에 매인 죄인이 그 죄를 끊고 하나님께로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이렇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치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자기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몸부림쳤습니다. 마침내 줄이 끊어지고
그는 강단을 향해 돌진하여 매큔 선교사와 서로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습니다.
나는 블레어 선교사와 함께 지방 사경회를 인도하러 가서 그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매큔
선교사가 후에 들려주기를, 길선주 장로가 줄을 끊으려고 몸부림치자 전 회중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줄이
끊어지고 길선주와 매큔 선교사가 서로 끌어안자 그 효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답니다. 수많은
남자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고, 다른 이들은 극심한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마룻바닥에 몸을 내던졌답니다. 길선주 장로는 교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저녁 집회 때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는 여성들을 위한 집회만 열렸는데 또다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 집회의 긴장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한 여성은 의식을 잃었고 다른 이들도 거의 통제력을 잃을 뻔했습니다.
평양 사람들을 모두 기쁨으로 충만하게 했던 집회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평양 밖에 있는
시골 지역에서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블레어 선교사와 나는 지방 사경회를 인도하고 막 돌아왔는데, 이 사경회에서도 평양과 동일하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자신의
죄로 인한 엄청난 고통과 그 죄를 자백함으로써 얻은 엄청난 기쁨과 평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평양에서 시작된 이 은혜의 사역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최상의 감사를 드리고, 우리가
평양에서 본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는 위해 준비 하시고, 우리뿐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위해 준비하신 위대한 축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올려 두리며, 주님의 이름이 영원, 또 영원히 영광을 받으소서.
[출전:G. Lee, "How The Spirit came to Pyeng
Yang", The Korea Mission Field, Mar., 1907] 번역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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