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Casio 전자시계는 중학교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선물해주셨던 추억이 있는 디자인이다. 험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많이 긁히고 흠집이 나서 지금은 공구함 한켠에 보관되어 있지만, 언젠가 손석희씨가 차고 다니는 것이 기사화 되면서 파는 곳도 많이 생긴 듯 하다.
얇은 바디와 메탈줄이 특징인데, 사실 몸으로 장난을 많이 치던 학생 시절에 줄에 긁혀서 상처가 많이 나곤 했던 기억이 나네. 지금 차고 있는 샤오미 와치도 관리를 잘 못해서 늘 어딘가 긁으면서 다니는데, 여전히 잘 관리할 자신은 생기지 않는다. 좀 얌전한 성격이었으면 하나 사서 벌써 차고 다녔을 수도... 참, 이 디자인으로 블루투스 연결 알람과 운동량 체크만 되면 인기를 끌 것 같네. 누가 안만들어 주나?
내가 애착하는 물건이 뭐가 있지? 생각해보면 내 주변은 대부분 기능적인 물건들 뿐이다맨 처음 생각난 것이 가죽 자르는 구두칼이었을 정도로. 하지만 구두칼을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애정하지는 않잖아. 조커도 아니고.
아마 기타를 그렸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당근에서 얻은 새 기타가 있지만 당시에는 동생에게 기타도 보내버린 데다가 사진도 없었고.
이 스케치북은 아내와 내가 아마 구미동에 살 때인가? 그림 취미로 삼아 보겠다고 4B 연필로 박스 그리고, 컵 그리고 하던 시절 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펜화 관심 가지면서 용케 찾아내어서 아직 많이 남은 공백들에 그림을 채워나가고 있지. 그래서 지금의 애착템은 스케치북으로 정했다. 옆의 만년필은 스테들러 464 F닙.
첫 여행으로 도쿄를 다녀왔는데, 이게 주재 기간 중 마지막 해외 여행이 될 지는 몰랐지. 파아란 하늘과 싸늘한 공기, 햇빛 외에는 딱히 온기를 느끼기 힘든 장소와 시간들이었다. 여기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천진과는 또 다른 느낌이겠구나 했지. 시부야에서 동쪽으로 고마에시에 교회와 집이 있었고, 주변의 골목들이 한국의 80년대 같이 마당들이 있는 단독주택 형태의 감성이었다. 물론 거리도 깨끗했고. 이기주 유튜브에서 전봇대가 있으면 좋다고 한 것이 있어서 일부러 공중에 선들이 지나가는 풍경을 골랐는데, 심심하지도 않고 괜찮네. 어설프게 표현한 구름 보다는 훨씬 낫다.
세연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떠난 경주 여행. 추운 날씨에도 경리단 길등 사람 많은 데는 많더라. 그 추위에도 주변 젊은이들도 모이고. 경주에서 벗어나 주상절리 바로 옆에 위치한 건축상 받은 카페 옆의 곧 변경 예정의 카페베네 이층에서 느긋하게 자리잡고 그린 그림. 건물의 그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많은 선들과 피할 수 없는 자동차들, 경비실 옆의 소나무와 멀리 비치는 바다. 눈으로 보는 것은 좋으나 참 조화롭게 그리기는 어렵네.
지리산 하동 켄싱턴 호텔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산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모여 있고, 작은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로 가는 길에 있던 찻집. 이 그림을 그리기 직전에 도쿄 골목을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펜을 들었으나, 수많은 나무들 아웃라인으로 그리면서 세부적인 명암을 해칭으로 넣는 것은 잠정 보류했다. 당시에는 좀 망쳤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 괜찮네. 아마 원본 사진을 망각하고 비교하비 못하니 좋아 보이는 듯.
화개장터는 나물이나 버섯, 재첩부터 오미자액 까지 방터가 아닌 공산품들을 진열해 놓은 느낌이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이긴 했으나 다양성과 시골에서 기대할 수 수 있는 순박함이 빠진 인공적인 느낌. 여기서 켄싱턴 리조트는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되었는데, 그 경로에서 만나는 풍경. 전봇대의 구도와 건물의 구도가 멋졌는데, 마지막에 구름을 애매하게 그려넣으면서 만화같아졌다. 집 앞에 오토바이는 복잡하게 생각했는데, 그리니까 그려지더라 라는 신기한 느낌이 있었다.
비오는 점심쯤 담양에서 식사하고 차 마시러 이동한 삼지내 마을. 비가 점점 심해지는 날씨였으나, 밝은 나무질감의 카페에서 처음으로 맛본 소금커피가 기억에 남는다. 오히려 어중간한 맑은 날이었으면 지나가는 풍경만 있었을텐데. 배경이 되는 산의 어렴풋함을 살리지 못하고 선명한 실선으로 그어버리는 실수.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거지. 그리고 담장 앞의 낮은 덤불들이 너무 성의없이 그려져서 아내에게 피드백이 있었다. 그래서 그려봤던 것이 두번째 그림. 정성이 필요하구나.
호주에 정착한 친구가 데려다 준 장소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미션 임파서블2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육지와 긴 다리로 연결된 낮은 성채와 같은 모습이 이전에 죄수들을 가두는 곳으로 사용되었을 것만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경이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의 거센 파도들과 더 거세게 피부로 느껴졌던 바람을 담기에는 종이도, 내 손도 많이 부족했다. 지금 보니 느껴지는 것이지만, 이전에는 그림자 표현에 많이 인색했구나.
이 그림을 그리기 전 까지는 위즐리네 집이 이렇게 생겼었는지 미처 몰랐다. 해리포터는 진즉에 글로 읽고 영화는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던 터라. 그런데 참 구성 잘했네. 저 세계관에서는 텐트 안에 궁궐이 펼쳐지는 마법이 있으니 집 모양이야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영화의 세트 디자이너가 엔간한 센스를 부렸음이 틀림없다. 참고로 영국 해리포터 박물관에서 가족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 나중에 찾아보니 피규어를 파는 상점도 많더라.
위 그림은 명암을 넣지 않았다. 궂이 해칭으로 디테일을 가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검은 점은 나중에 실수로 묻은 잉크인데, 용눈으로 삼아서 그림을 추가할까 생각만 했었다. 아무래도 용을 그리려면 집을 휘감아야 할 것 같네.
작은딸이 영국에서 보낸 온 사진 중에 어떤 건물 입구에 크게 인쇄되어 있던 달리의 초상을 따라 그린 것이 인물 초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물론 소재들을 찾다보니 이렇게 강렬한 표정은 흔하지 않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철학자들을 그린 이유는 Pinterest 에서 잡히기도 했고, 예전 흑백 사진들이 특징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었다. 펜이 당연히 Black & White와 잘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리고 이 사람들은 뭐랄까. 시대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그리고 본인들도 그런 내적 힘이 있어서 그런지 자신감이나 편안함, 에너지가 인상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러셀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인다. 그냥 즐기고 풀어져 있는 것도 좋은데, 그 보다는 어딘가 골똘해 있는 모습이 인상을 남긴다.
Ibis라는 이름 외에 Garbage bird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우는 것 같다. 익숙한 이름으로 치면 따오기 종류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따오기를 본 적이 있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관광객들 외에는 현지인들은 반기지도 않고 신기해 하지도 않는 존재. 따지고 보면 사람들 보다 먼저 정착해 살던 새 일텐데 이런 취급 받는 걸 알면 많이 억울할 듯.